무안 설화 이야기 상세 페이지
무안 스토리 자원
삼향읍 설화 이야기 상세
항목 | 삼향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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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석꾼 나종만이 지은 유교리 고가 | ||
구분 | 고택 | ||
장소 | 삼향읍 유교 2리 유교마을 | ||
줄거리 | 국가 중요민속자료인 유교리 고가는 나종만씨가 1912년에 지었다. 나종만씨는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몽탄까지 땅을 가지고 있는 천석꾼 부자였다. 머슴이 두 명 있었고 마을 주민들도 어려울 때 곡식을 빌리고, 천석꾼집에 일을 도와주었다.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이라 명절 때는 주민들이 그곳 마당에 모여 강강술래나 공치기 등을 하였다. | ||
본문 |
(조사자: 나상렬 가옥이 1912년도에 지어졌다고 하더라구요?)
대정 몇 년이더라? 대정 몇 년이지?
(조사자: 그러면 그게 지어질 때는 나종만 시대에 지어졌다고 했지 않습니까? 근데 그 나종만씨의 아버님이 어떤 일을 하셨다고 하셨죠?)
그 양반이 여기서 살았지. 그 양반도 농사짓고 그랬겠지?
(조사자: 그러면 나종만씨 아버님 때부터 살았었나요?)
나종만씨 아버지가 삼형제랑께. 삼형제였어. 거기서. 이준씨라고 이준씨. 그 양반이 종만씨 아버지가
(조사자: 나 이자 준자.)
응. 이준씨. 그러고 거가서 삼형제가 익선이, 할아버지가 막둥이, 둘째가 상진이 할아버지 그가 둘째, 여가 셋째. 그러다가 종만씨 형제도 삼형제여. 종만씨 형제도 삼형젠디, 삼형제가 다 살았지. 근디 봉수 알지라 나봉수? 인자 고인이 되불고.
(조사자: 그러면 나종만씨 아버님인 나이준 어르신에 대해서는 따로 어르신이 기억나는 것은 없으시고?)
없죠.
(조사자: 나종만씨는 기억 나셔요? 어떤 분이었는가?)
아. 풍체가 좋지.
(조사자: 그러면 나종만 어르신의 아들 나상렬씨의 아버지의 성함은 어떻게 될까요?)
기수지, 나기수씨.
(조사자: 그러면 나 기자 수자 어르신은 기억이 나신가요?)
에. 저번에 앞에 돌아가셨어.
(조사자: 그 분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그 양반도 글씨도 잘 쓰고, 키가 컸어요. 호걸이여. 근디 인공 돌아와가꼬 돌아가셨어.
(조사자: 상렬이가 저 할아버지네 아버지 스타일이여 잉? 내가 듣기로.)
으. 맞어.
(조사자: 여기 나상렬 가옥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 주세요? 여기에 곡물도 오고 풍물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명절 때 추석이나 정월달에 동네에서 다 모아서라. 거 가서 강강술래하고 놀고 마당에서 뛰어 놀아, 무슨 놀음도 하고 그렇게 했어라, 그러고 그 남자들 거기서 모두들 그때 공치기 마당에서라 그것도 하고 그랬어라. 그리고 배구도 하고 그랬죠.
(조사자: 집의 터가 지금 보면 그렇게 안 넓잖아요?)
안 넓아?
(조사자: 보기에는 근데 거기서 주민들이 강강술래도 모여서 하고 그랬어요?)
안에 가서 넓어. 겁나 넓어라.
(조사자: 그리고, 지금 보면은 행랑채, 창고하고 행랑채죠 문 옆에가 있는 게?)
(청중: 행랑채.)
(조사자: 행랑채죠? 대문채하고, 지금 4개가 남아 있잖아요? 혹시 다른 거 있었는데 무너진 거라든가 그런 게 있나요? 처음부터 이 형태였을까요?)
글쎄라우. 없어진 것은 요짝에 들어가서 보믄 좌측에 가에 가서 거가서 헛간도 있었고, 방앳간도 있었고, 문은 지금 남아 있어. 뒤로 나가믄 문은 있었는데 어째서 그것을 기억을 잘 하냐면은 그 초상이 나믄 거그서 용어를 만들어 놓고라 거그서 손님을 받았어. 그렁께 내가 잘 알제. 그러믄 인자 그 손님들 고 앞에 가서 앉아서 자시고 소도 잡고 그랬어라. 소도 잡고 그렇게 해서 잔치를.
(청중: 옛날에 거가 디딜방아 있드만.)
방아도 있었고.
(조사자: 여기서 올라가믄 저 행랑채 있잖아요? 오른쪽에. 짚으로 이은 거. 그 넘어가 있었잖아.)
거근 아니여, 넘의 집이여.
(청중: 변소. 변소)
(조사자: 내가 잘못 봤나?)
있었어. 지금도 있어.
(청중: 지금 문화재에서 짓고 있었는디)
(조사자: 사당은 관동 입구에 있었제. )
야.
(조사자: 그러면 거기에 헛간도 있었고, 방앗간도 있었고, 지금은 다 없어졌다는 말씀이시죠?)
그것이 없어져 버렸당께.
(조사자: 아까 방앗간에가 디딜방아가 있었어요?)
디딜방아 있었어.
(청중: 거기서 방아 찧고 옛날에 보리방애 같은 거 거기서 다 찧어서 해 먹었지라.)
(조사자: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거기를 다 이용했다는 건가요?)
아니 여기 있었어. 동네에서 내가 알기로는 하나, 둘, 셋, 넷, 다서, 여섯 얼른 세도 여섯 개 있었어. 디딜방앗간이.
“(중간 생략)”
51년도에 군대 영장이 나와서 갔는데 여수로 갔습디여. 여수로 가가꼬 불합격이 났어. 그런디 인자 여기를 오는디, 저녁 캄캄한데 들어왔어. 임성역에 도착해서라. 그래가꼬 온께 방아를 찧고 있습디다, 어머니랑 모두(하하하) 쌀방아 찧고 있드만.
“(중간 생략)”
(조사자: 천석군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땅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겠네요.)
(청중: 신기 너머까지 )
여그를 임종오씨라고 전에 왜정 땐가 경찰 노릇을 했어. 이장도 하고 그랬어. 그 양반이 그러더만 그 양반도 이장을 하고 나도 이장을 해고 그 양반도 같이 잘해. 그 이야기를 합디다 종만씨 이야기를 하드만 뭔 이야긴고 허니
“유교가 천석군 났다는 것이 참 이상한 일이라 그러더라구”
어째서 그래요? 긍께. “생각해보소, 지산도 000 잉, 왕산도 000 잉, 임성도 임성앞에까지 000, 용포 000 ” 어디가서 어떡해서 나왔드냐고 그러더랑께. 그런디 그것이 아니라 몽탄 아마 무안군이 있었을 것이오. {청취 불능}
(조사자: 그 말씀은 이쪽뿐만 아니고 몽탄까지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이시죠?)
아따. 다 있었어. 그래가꼬 그래서 소작인들이 비까지 세워줬었어.
(조사자: 그 비가 어디가 있을까요?)
잡아져 버렸어.
(조사자: 아까 그 종을 두 명 정도 부린다고 했었잖아요? 머슴을?)
머슴 둘이지. 쌀꾼 하나 있고 쟁기질하는 놈도 있고 그래.
(조사자: 두 명 갖고는 부족했겠는데요?)
부족허제. 이렇게 아까 얘기 햅뎌. 그 봄에 없은께 보리도 얻어다 먹고, 쌀도 얻어다 먹고 하면 이제 내가 갚아줘야제. 그 집 가서 일허제.
(청중: 동네사람들이 일을 많이 했제. 그때만 해도 제를 치뤄 새벽에 그러믄 그 새벽에 인자 뭐라도 뭐 얻어먹으라고 가서 일을 해 주고 그러제)
(조사자: 여그 이 근방에 사신 분들은 거의가 다 종만씨 집에서)
다 얻어 먹고. 아까 얘기 햅뎌. 나가라 하믄 거시기 밥솥 애기 이불 던지고 나간답디어, 그 말이여.
(청중: 그라믄 모가지 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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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장소 | 삼향읍 유교리 유교마을회관 | ||
제보자 | 나종기(남, 1930년생) | ||
조사일 | 2016.07.15 | ||
조사자 | 서정찬. 김수경. 김미선. 김남현. | ||
키워드 | #유교리 고가 #나종만 #1912년 #천석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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